꽃은 누군가의 눈요기를 위해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꽃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꽃을 아름답다 느끼는 이에게 감상적이라 말할 수는 있어도, “그건 꽃의 의도가 아니다”라고 말하진 않는다. 그런데 문학은 왜 다를까. 설령 저자의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무슨 상관인가.
방을 정리하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를 우연히 펼쳐보았다. 시와 발췌된 소설들이 여럿 수록되어 있다. 시는 거의 모든 구절에 밑줄을 치고 화살표로 옮겨 여백에 해석과 의미를 빼곡히 적어두었다. 의미하는 바는 이것이라고 배워온 시간의 흔적이다. 저자의 생애, 시대적 배경 .. 그 모든 것을 종합해 도출된 단어의 의미를 배웠다.
그런데 그냥 내가 느끼는대로 의미를 찾으면 안될까? 세상에 내놓아진 소설과 시를 독자마다 다르게 읽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글을 읽어나갈 때 독자의 주관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 그것이 문학과 비문학의 본질적인 차이다. 해석은 독자의 몫이며, 나는 그 모든 해석을 품는 것이 곧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해석을 사랑해서 문학을 좋아한다.
그런데 우리는 문학을 비문학처럼 읽어왔다. 권위를 가진 누군가 정한 해석을 '정답'으로 정하고, 정해진 해석을 외우고, 그 해석에 맞춰 의미를 되짚는다. 문학을 비문학으로 읽어온 지난 날의 나를 애도하며, 이제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 문학을 다시 문학으로 읽자고. /남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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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