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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김완하의 시 한편-그네 임영조(김창완 교수)

작성일 2017-12-05 09:45

작성자 장효진

조회수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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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명퇴한 중년일까 

아파트단지 어린이 놀이터에서 

반백의 사내가 아침을 민다 

서너 살 손주 놈을 그네 위에 앉히고 



줄을 꼭 잡아라! 놓치지 마라! 

거듭 당부하면서 힘껏 밀어올린다 

와와, 둥근 해가 솟는다 아이가 뜬다 

허공 가득 퍼지는 해맑은 웃음소리 

나뭇잎들 팔랑팔랑 손뼉을 친다 



땅을 박차고 하늘 높이 올라라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라 

검버섯 핀 손등으로 그네를 미는 

저 반백의 사내는 지금, 놓쳐버린 꿈 

흘리고 온 세월을 미는 것일까 

남은 생을 밀어내는 것일까 



생이란 무릇 그네 타기 같은 것 

아무리 밀어도 밀어 올려도 그네는 

다시 제자리로 내려올 것이다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에서 서너 살 손주를 그네 태우는 반백의 사내. 그는 필시 퇴역한 사내일 것. 그네가 높이 차 오를수록 해맑은 웃음소리 쏟아내며 좋아하는 아이. 등뼈가 흰 반백의 사내와 대조되어 인생의 회한을 드러낸다. 날마다 제 한 몸 밀어 올리려 용쓰던 퇴역의 중년이 아이에게 줄을 꼭 잡고 놓치지 말라며 외친다. 줄이란 반백의 사내에겐 직장이고 사회적 지위, 기득권이었다. 아이에겐 장차 돈, 권력, 지위, 명예 등 사회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사내는 아이를 밀어 올릴수록 서서히 이 사회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그네는 인생을 함축. 그네에는 근본적으로 갈등구조가 내재한다. 그네는 지상으로부터 공중으로 박차 오른다. 그리고 올라간 그 높이에서 지상으로 하강한 후 다시 반대편 하늘로 솟구친다. 그리고 끝내 지상으로 다시 추락한다. 그네는 이렇게 땅과 하늘 사이를 오가기 반복한다. 하늘 향한 상승과 지상을 향한 하강의 두 운동 축을 지닌 그네. 그네가 오가는 지점에서 지상은 현실이고 하늘은 이상인 셈. 우리는 그넷줄 타고 가는 숙명이니.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가 매달려야 하는 덫. 우리는 그넷줄의 구속을 통해서만 하늘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김완하 시인·한남대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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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 2021-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