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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김완하의 시 한 편- 저 분처럼 오춘옥(김창완 교수)

작성일 2017-10-31 10:06

작성자 장효진

조회수 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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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안농원 뒤뜰로 물러나 

꽃 대신 허공을 키우는 저 분, 

금형수리공으로 일하다 

일찌감치 현장에서 밀려난 

고모부 불편한 여생 같은 분, 

고혈압에 당뇨까지 

중증으로 망가져 

지팡이 짚고 온 

하루치 고요를 거처 삼았네요 

때 이른 서리에도 

풀 죽는 법 없었는데 

잎새들 수다와 풀씨들 연애, 

촘촘 기록한 잔뿌리마저 

겉장 뜯긴 일기처럼 바래어가고
 
울음인 듯 웃음인 듯 

비와 바람의 무늬만 몸에 새겨요 

매미가 붙여 준 

귀뚜라미 한 마리 입양해 사는데 

빈털터리 노후를 물려 줄 일이 

깜깜 걱정이라 하네요 


땡볕 불볕 폭염 가뭄 태풍 폭우. 그 힘겹던 여름의 일선에서 물러나 뒤뜰에 꽃 대신 허공을 키우는 저 분이라니. 허, 허, 허. 허공이 비로소 제 격에 맡는 구실을 하는 찰나다. 거기에는 반드시 허공이 있어야지. 허공 없이 어찌 그 뒤뜰이 존재하랴. 그곳은 고모부의 병 깊은 중증의 몸처럼 지팡이 없이는 또 하루의 시간도 허락지 않느니. 담장에 기대어 서있는 한 그루 감나무만이 생을 안다 하겠다. 지난 날 때 이른 서리에도 기골이 창대하던 옛 기품 다 사라지고. 어느새 겉장 뜯긴 일기처럼 빛바래어 비와 바람의 무늬만 제 가슴에 깊게 새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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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 2021-03-11